부작위범의 개념, 성립요건 및 대법원 판례

1. 관련조문

형법 제18조(부작위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

 

2. 개념

법규범에는 금지규범과 명령규범이 있다. 금지규범을 위반하는 행위를 작위라고 하며, 명령규범에 의하여 요구되는 일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 소극적 형태를 부작위라고 한다.

범죄를 성립시키는 행위의 종류에는 작위와 부작위가 모두 포함된다.

범죄는 보통 적극적인 행위인 작위에 의하여 실행되지만 때로는 결과의 발생을 방지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하여도 실현될 수 있다.

부작위는 가능하고 기대되는 특정한 행위를 하지 않는데 본질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작위는 단순히 그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대되는 특정한 그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형법각칙의 대부분의 범죄구성요건은 행위자의 적극적인 ‘작위’행위를 통해서 실현하도록 되어 있는 작위범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형법각칙의 범죄목록을 보면 적극적인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에 의해서 실현하도록 되어 있는 범죄구성요건도 있다. 구성요건적 행위가 부작위인 범죄를 ‘부작위범’이라고 한다.

그런데 형법상 부작위범은 구성요건적 행위가 부작위로 예정되어 있는 범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작위범의 구성요건을 부작위에 의해 실현하는 경우에도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를 부진정부작위범이라 하며,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형법 제18조는 ‘부작위범’이라는 표제아래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위험발생을 방지할 의무’라 함은 해당결과의 발생을 방지하여야 할 ‘작위의무’일반을 뜻하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것은 작위의무를 발생시키는 ‘선행행위’를 의미하며,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라 함은 ‘부작위’로 나아간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통상 이해되고 있다.

 

3. 성립요건

부작위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결과를 방지하지 않은 자가 결과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자, 즉 보증인이여야 하며, ② 그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구성요건의 실행과 같이 평가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1) 보증의무 있는 자

 

1) 보증인 지위의 발생근거

부진정부작위범의 주체적 지위를 규정하고 있는 제18조의 규정은 보증의무 있는 자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널리 해석의 여지를 주고 있다. 특히 제18조 전단의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와 후단의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의 해석의 초점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① 형식설

작위의무에 관하여 그 발생근거만을 문제 삼아 법령·계약·조리 또는 선행행위에 의하여 작위의무의 근거가 인정되면 족하다.

 

② 실질설(기능설)

보증의무를 실질적 관점에서 판단할 것을 주장하고 이를 법익의 보호기능에 의한 보증인의무인 보호의무와 위험에 대한 감시의무에 따른 안전 또는 지배의무로 분류하였다.

 

③ 절충설(결합설)

형식설과 실질설(기능설)을 결합하여 보증의무를 파악하는 견해이다. 통설적 견해이다. 여기에는 ㉠ 형식설의 입장에서 출발하면서 형식설의 범위를 어느 정도 확대하기 위해 실질설의 실질적 관점인 보호의무와 감시의무를 결합하는 견해도 있고 반대로 ㉡ 실질설의 입장에서 출발하면서 작위의무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한계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형식설의 내용을 고려하는 견해도 있다.

 

2) 작위의무의 발생근거

 

① 법령에 의한 작위의무

법령에서는 법률, 명령, 규칙 등이 포함되고 공법인가 사법인가를 불문한다. 여기에는 친권자의 보호의무(민법 제913조), 부부간의 부양의무(민법 제826조), 의사의 진료의무(의료법 제16조) 등이 포함된다.

 

② 계약에 의한 작위의무

계약에 의하여 작위의무를 인수한 경우이다. 여기에는 고용계약에 의한 보호의무, 간호사의 환자보호의무, 교사의 아동보호의무 등이 포함된다.

 

③ 조리에 의한 작위의무

조리에 의한 작위의무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견해와 작위의무는 법적 의무이어야 한다고 하여 반대하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판례는 조리에 의한 작위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동거하는 피용자에 대한 고용주의 보호의무, 목적물의 하자에 대한 신의칙상의 고지의무, 부동산 거래에 있어서 계약을 취소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하자에 대한 신의칙상의 고지의무 등이 포함된다.

 

④ 선행행위에 의한 작위의무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는 그 위험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3) 보증인지위의 내용

 

① 보호의무에 의한 보증인지위

부작위범과 피해자 사이의 보호관계로 인하여 보증인지위가 발생하는 경우로서, 가족적 보호관계, 긴밀한 공동관계, 보호기능의 인수가 포함된다.

i) 가족적 보호관계는 가족상호간에는 서로 상대방의 법익에 대한 위험을 방지할 보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의 보증인의무는 상호간의 신뢰관계와 의존관계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된다. 따라서 별거중인 부부 사이에는 이러한 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

ii) 긴밀한 공동관계는 밀접한 생활공동체나 위험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 사이에 특수한 신뢰관계가 존재한다면 보증인지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탐험대의 구성원 등이 포함된다.

iii) 보호기능의 인수는 피해자의 법익에 대한 보호기능을 자의로 인수하여 피해자와 인수인 사이에 보호관계가 발생한 때에 보증인지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보호기능의 인수는 반드시 계약에 의해 성립될 필요는 없고, 일방적으로 그 기능을 인수한 경우에도 그로 인하여 다른 구조의 가능성이 배제되었거나 새로운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에 보증인지위가 인정된다. 여기에는 수영을 배우려는 아이의 수영지도를 맡은 경우, 의사의 환자의 치료를 맡은 경우 등이 포함된다.

 

② 안전의무로 인한 보증인지위

일정한 위험원으로부터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로서, 선행행위자, 위험원의 관리자, 타인에 대한 감독책임자가 포함된다.

i) 선행행위로 인하여 보증인지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첫째, 선행행위가 결과발생에 대한 직접적이고 상당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둘째, 선행행위는 위법한 것이어야 한다는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당방위에 의하여 강도에게 폭행을 행사하여 강도가 상해를 입은 경우에 강도의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보증인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

ii) 위험한 물건시설 등의 소유자·점유자, 기타 관리자는 그 위험원이 다른 사람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안전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안전의무는 법령 또는 계약뿐 아니라 위험원의 관리를 자의로 인수한 경우에도 발생한다.

iii) 타인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감독할 보증인지위에 있다. 여기에는 책임무능력자의 친권자, 부하직원을 감독하는 상관, 선원을 통솔하는 선장, 수형자를 감독하는 교도관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은행에서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부하직원의 업무를 감독해야 하는 은행의 이사에게는 부하직원이 업무를 적법하게 처리할 것을 감독하는 보증인지위가 인정된다. 그런데 부하직원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은행에 손해를 발생시킬 수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은행의 이사는 부작위에 의한 배임죄의 방조범이 성립한다.

 

(2) 행위정형의 동가치성(대등성/상응성)

부진정부작위범이 작위범과 동일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보증인의 지위에 있는 자의 부작위가 작위적 방법에 의한 구성요건의 실현과 동등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부진정부작위범에서의 동가치성이라고 한다.

형법은 이를 입법화하고 있지는 않으나 학설과 판례에서 인정하고 있다.

즉, 부진정부작위범의 성립은 보증인적 지위만으로는 부족하고,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구성요건실현과 같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하는 동가치성이 요구된다.

 

4. 사례(대법원 판례)

 

(1) 대법원 1982. 11. 23, 82도2024

甲은 중학교 3학년인 A를 포박 감금한 상태에서 A가 실신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살해의 범의가 생겨 위험발생, 즉 사망을 방지하지 않고 포박 감금상태에 있는 A를 그대로 방치하여 사망케 하였다. 여기서 A의 사망은 감금으로 인하여 발생하였으며, 감금은 甲이 A에게 행한 행위이다. 따라서 甲은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A가 실신하였기 때문에 A를 구조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甲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특정한 행위인 ‘구조’행위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A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하게 된다.

 

(2) 대법원 1992. 2. 11, 91도2951

甲은 조카인 A(10세)를 살해할 것을 마음먹고 저수지로 데리고 가서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 쪽으로 유인하여 함께 걷다가 A가 물에 빠지자 그를 구호하지 아니하여 익사하게 하였다. 이 사안에서는 A가 스스로 미끄러져서 물에 빠진 것이고, 甲이 A를 살해하기 위한 실행에도 착수하지 않은 예비단계라 하더라도, A에게는 익사의 위험에 대처할 보호능력이 없는 나이 어린 조카를 익사의 위험이 있는 저수지로 데리고 갔기 때문에 A가 물에 빠졌다면 그를 구호하여야 할 법적인 작위의무가 있다. A가 물에 빠진 후에 甲이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그를 구호하지 아니한 채 그가 익사하는 것을 용인하고 방관한 행위(부작위)는 甲이 A를 직접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평가될 수 있다. 이에 甲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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