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보호원칙의 의의, 성립요건, 한계 및 적용영역

1. 신뢰보호원칙의 의의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기관의 적극적 또는 소극적 행위의 정당성 또는 존속성에 대한 개인의 보호가치 있는 신뢰를 보호해주는 원칙이다. 신뢰보호는 행정의 적법성의 원칙과 갈등관계를 형성할 수 있으며, 행정의 적법성 원칙을 배제할 만한 우월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신뢰보호 원칙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

형식적 적법성을 희생하더라도 개인의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 법적 안정성, 정의의 이념, 실질적 법치주의에 부합할 때 인정될 것이다.

신뢰보호의 내용으로는, 존속보호는 상대방이 신뢰한 종전의 법 상태를 보호해 주는 존속보호와 상대방의 신뢰가 보호가치 있으나 행정의 법률적합성의 보호가 더 우월한 경우 보상으로 신뢰보호를 인정하는 보상보호가 있다.

 

신뢰보호원칙의 이론적 근거는 법치국가원리에 뿌리를 둔 당사자의 법적 생활의 안정성의 필요성에서 도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대법원 2006. 11. 16. 선고 2003두12899 전원합의체 판결)

 

2. 성립요건

판례는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i) 행정청이 개인에 대하여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표명을 해야 하고, ii) 행정청의 견해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데에 대하여 그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iii) 그 개인이 그 견해표명을 신뢰하고 이에 상응하는 어떠한 행위를 했어야 하며, iv) 행정청이 위 견해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그 견해표명을 신뢰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되어야 하며, v) 마지막으로 위 견해표명에 따른 행정처분을 할 경우 이로 인해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않아야 할 것을 판시하였다. (대법원 2003. 3. 28. 선고 2002두12113 판결) 학설의 논의 역시 같은 체계를 취하고 있다.

 

(1) 행정청의 선행행위의 존재

신뢰보호의 원칙의 적용을 위해서는 행정청의 일정한 선행행위가 존재해야 한다. 판례에서는 이를 ‘공적 견해의 표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때의 선행행위에는 행정청이 행하는 모든 행정작용이 포함되며, 작위뿐만 아니라 비과세관행과 같은 부작위도 포함된다. 다만, 행정기관의 의사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표시되었다고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3. 9. 5. 선고 2001두7855 판결)

공적 견해표명이 있었는지 여부는 반드시 행정조직상의 형식적인 권한분장에 의하지 않고 담당자의 조직상의 지위와 임무, 해당 언동을 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 및 그에 대한 납세자의 신뢰가능성에 비추어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1995. 6. 16. 선고 94누12159 판결)

또한 공적 견해표명은 구체적인 행정권한 행사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추상적인 질의에 대한 일반론적 견해표명에 불과한 경우에는 인정될 수 없다. (대법원 2006. 6. 9. 선고 2004두46 판결)

 

(2) 행정청의 선행행위에 근거한 상대방의 행위의 존재

행정청의 선행행위에 근거한 상대방의 행위가 존재해야 한다. 즉 아직 행정청의 선행행위에 상응하는 상대방의 행위가 없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기대이익이나 예상이익의 보호를 주장할 수는 없다. 이 때의 상대방의 행위란 행정청의 선행행위를 이유로 하여 개인이 행한, 자신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3) 선행행위에 대한 신뢰와 상대방의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의 존재

상대방이 행정청의 선행행위의 적법성 또는 유효성을 신뢰하고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했어야 한다. 따라서 상대방이 행정청의 선행행위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행정작용이 사후변경의 유보 하에 행해진 경우에는 신뢰보호를 주장할 수 없다.

 

(4) 상대방의 신뢰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보호가치 유무의 판단은 신뢰를 얻기까지의 과정에서 상대방이 귀책사유 있는 행위를 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즉 상대방이 부정한 수단으로 처분을 받은 경우, 예컨대 사기・강박・뇌물제공・신청서의 허위기재 등에 의해 처분을 받은 경우에는 보호가치 있는 신뢰를 인정할 수 없다. (대법원 1995. 1. 20. 선고 94누6529 판결)

또한 상대방이 행정작용의 위법성을 알았거나 알아야 했을 경우나 행정작용의 위법성이 자신의 책임영역에 속할 경우에도 보호가치 있는 신뢰의 성립은 인정될 수 없다. (대법원 2002. 11. 8. 선고 2001두1512 판결)

 

(5) 선행행위에 반하는 행정작용의 존재

행정청이 선행행위에 반하는 행정작용을 함으로써 선행작용을 신뢰한 상대방의 이익을 침해하는 결과가 초래되어야 한다.

 

3. 신뢰보호의 한계

신뢰보호는 법치국가원리 중 법적 안정성을 근거로 하는 것으로, 법치국가원리의 다른 내용인 법률적합성과 이익형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헌법재판소 2003. 4. 24. 선고 2002헌마611 결정)

대법원은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니어야 함’을 신뢰보호원칙의 성립요건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어, 이를 신뢰보호원칙의 (소극적) 성립요건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 1998. 11. 13. 선고 98두7343 판결)

 

4. 신뢰보호의 적용영역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의 법 원칙으로 행정의 전 영역에 적용된다. (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두5940 판결)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는 주요 영역은 다음 사항들이다.

 

(1) 행정행위의 취소나 철회의 제한

수익적 행정행위의 취소나 철회의 제한사유로 신뢰보호가 적용될 수 있다. 행정기본법 제18조(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의 취소)에서도 당사자의 신뢰 보호를 할 필요가 있는 경우를 고려하고 있다.

 

(2) 행정계획의 변경

사인이 행정계획을 신뢰하고 이에 근거하여 일정한 행위를 하였으나, 해당 행정계획이 변경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신뢰보호원칙의 적용이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행정계획의 변경이나 폐지에 대한 계획보장청구권은 공익을 추구하는 행정계획의 특성상 인정되기 어려우나, 경우에 따라서는 손실보상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3) 확약

확약은 어떠한 행정처분을 하거나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행정청은 불가항력 등 특별한 사유나 법령의 변경이 없는 한 확약내용에 구속된다.

 

(4) 소급입법

소급입법은 진정 소급입법과 부진정 소급입법으로 나뉘는데, 진정 소급입법은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새로운 입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진정소급입법은 개인의 신뢰보호와 법적 안정성을 위해 법치국가에서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헌법 제13조 참고). 그러나 예외적으로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경우, 법적 상태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워 보호할 만한 신뢰이익이 적은 경우, 소급입법에 의한 당사자의 손실이 없거나 아주 경미한 경우, 신뢰보호의 요청에 우선하는 중대한 공익상의 사유가 소급입법을 정당화하는 경우 허용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 1999. 7 22. 97헌바76)

부진정 소급입법은 새로운 입법이 있기 전에 시작된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이지만 현재에도 완료되지 않고 진행 중인 사실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새로운 입법을 적용하는 것을 말하며,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있으나 소급효를 요구하는 공익상의 사유와 신뢰보호 간의 형량을 통해 신뢰보호의 요청이 입법자의 형성권을 제한할 수 있다. (대법원 2000. 3. 10. 선고 97누13818 판결)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