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성실의 원칙과 신의칙이 구체화된 하부원칙

1. 신의성실의 원칙

 

(1) 의의

민법 제2조(신의성실) ①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이다. 여기서의 신의성실은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성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적용범위

사적 자치의 폐해를 예외적으로 제한하는 기능을 담당하며, 재판규범인 동시에 행위규범이고, 일반적으로 모든 사법관계에 적용되나, 공법관계에도 널리 적용된다. 다수의 학설과 판례는 권리의 행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에는 권리남용이 된다(대판 2007. 1. 25, 2005다67223)는 입장에 있다.

다만 법치주의가 적용되는 행정법이나 세법분야 에서는 합법성의 원칙을 희생해서라도 상대방(납세자 등)의 신뢰를 보호함이 정의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신의칙을 적용한다는 것이 판례이다. (대판 1992. 9. 8, 91누13670)

 

대법원 2006. 10. 12. 선고 2004다48515 판결

부동산 거래에 있어 거래 상대방이 일정한 사정에 관한 고지를 받았더라면 그 거래를 하지 않았을 것임이 경험칙상 명백한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사전에 상대방에게 그와 같은 사정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1다107900 판결

위임계약에서 보수액에 관하여 약정한 경우에 수임인은 원칙적으로 약정보수액을 전부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위임의 경위, 위임업무처리의 경과와 난이도, 투입한 노력의 정도, 위임인이 업무처리로 인하여 얻게 되는 구체적 이익, 기타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약정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예외적으로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보수액만을 청구할 수 있다.

 

2. 신의칙이 구체화된 하부원칙

 

(1) 사정변경의 원칙

사정변경의 원칙은 법률행위의 기초가 된 사정이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으로 현저히 변경되어 처음의 계약내용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부당하게 되는 경우, 이를 변경 또는 해제, 해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행위의 기초가 되었던 사정이 법률행위 후에 변경되었을 것, 사정의 변경을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을 것, 사정변경이 현저할 것, 당사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것이 아닐 것, 당초의 행위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공평에 반할 것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대법원 2017. 6. 8. 선고, 2016다249557, 판결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할 수 없었으며, 그로 인하여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당사자의 이해에 중대한 불균형을 초래하거나 계약을 체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정이란 당사자들에게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사정을 가리키고, 당사자들이 계약의 기초로 삼지 않은 사정이나 어느 일방당사자가 변경에 따른 불이익이나 위험을 떠안기로 한 사정은 포함되지 않는다.

 

(2) 모순행위 금지의 원칙(금반언의 원칙)

모순행위 금지의 원칙은 영미법상 금반언의 원칙과 유사한 법리이다. 어떤 행위를 한 자가 후에 그와 모순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상대방의 신뢰를 해하는 경우에 그 후행행위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원칙을 말한다. 선행행위로 인한 신뢰의 창출이 있을 것과 상대방의 신뢰가 보호할 가치가 있을 것을 그 적용요건으로 한다. 판례는 모순행위에 대해서는 ‘금반언 및 신의칙에 반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강행법규에 위반하는 법률행위를 스스로 행한 사람이 강행규정 위반을 이유로 그 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 강행규정의 취지를 관철하는 것이 신의칙을 적용하여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는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육재산의 매도나 담보제공이 금지되는데(사립학교법 제28조 제2항), 판례는 이를 위반한 처분은 무효로 보며, 이때 이를 위반하여 교육관련 재산을 처분한 자가 무효를 주장한다고 하여도 학교 자체가 형해화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고 하였다.

한편 강행규정 위반이라도 무효주장이 신의칙 위반이 되는 경우가 있다. 강행법규의 규정 목적이 더 이상 없어진 경우에는 신의칙을 적용할 수 없다.

 

대법원 1986. 10. 14. 선고 86다카204 판결

지방자치단체가 그 행정재산인 토지를 매도하였더라도 그 후 공용폐지가 되었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위 토지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이행을 구하는 것은 그 재산을 회수하여 공공의 용에 사용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한편 매도인인 지방자치단체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매매행위 당시에 동 토지가 행정재산임을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매수인들로서도 동 처분행위가 적법하다고 믿어 동 매매계약을 체결하였을 것이므로 처분행위 후 20년 가까이 경과하고 공용폐지까지 된 이제 와서 당해 토지가 매매당시에 행정재산임을 내세워 무효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행사에 해당되어 허용될 수 없다.

 

(3) 실효의 원칙

권리자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여 상대방에게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고 상대방도 이에 따라 행동한 경우, 그 후에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 이를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 보아 그 권리행사를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1995. 8. 25. 선고 94다27069 판결

송전선이 토지 위를 통과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서 토지를 취득하였다고 하여 그 취득자가 그 소유 토지에 대한 소유권의 행사가 제한된 상태를 용인하였다고 할 수 없으므로, 그 취득자의 송전선 철거 청구 등 권리행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실효의 원칙이라 함은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함에 따라 그 의무자인 상대방이 더 이상 권리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신뢰할 만한 정당한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경우에 새삼스럽게 권리자가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법질서 전체를 지배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종전 토지 소유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정은 그 토지의 소유권을 적법하게 취득한 새로운 권리자에게 실효의 원칙을 적용함에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것은 아니다.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권리 불행사에 대한 신뢰의 부여(대판 2005. 10. 28, 2005다45827), 신뢰에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것, 그리고 그 신뢰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대판 1989. 4. 11, 87다카131)의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4)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

민법 제2조(신의성실) ②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권리행사가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 권리남용이 되어 정당한 권리행사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원칙(신의성실 원칙의 하부원칙)이며, 권리의 행사가 외관상 적법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정당한 권리행사로 볼 수 없는 경우에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2003. 2. 14. 선고 2002다62319, 62326 판결

권리행사가 권리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려면, 주관적으로 그 권리행사의 목적이 오직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려는 데 있을 뿐 행사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경우이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그 권리행사가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한 비록 그 권리의 행사에 의하여 권리행사자가 얻는 이익보다 상대방이 잃을 손해가 현저히 크다 하여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이를 권리남용이라 할 수 없고, 어느 권리행사가 권리남용이 되는 가의 여부는 각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권리남용의 성립 요건은 권리의 행사가 있을 것, 그 권리행사로 인한 권리자의 이익과 상대방의 불이익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이 있을 것이다.

한편 가해 의사라는 주관적 요건도 요구되는가 하는 문제에서 학설은 대체로 객관적 요건이면 충분하다고 보는 반면, 판례는 객관적요건 외에 주관적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객관적 사정에 의해 주관적 요건을 추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경우와 법제도의 취지를 악용하는 경우에는 주관적 요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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