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규칙의 법적 성질

1. 비법규설(종래 통설)

법규란 일반적 추상적 규율로써 국민과 행정권을 구속하고 재판규범이 되는 법규범을 말하는데, 행정규칙은 원칙적으로 대내적 구속력만 있고, 대외적 구속력은 없으므로 법규성이 없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행정규칙의 대외적 효력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이를 인정하면서도 행정규칙의 법규성을 명백히 부인하는 입장이다. “행정규칙이 대외적 효력을 발생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행정규칙의 직접적 수범자인 행정기관을 매개로 한 것이며, 법적 효력 역시 평등원칙 등을 매개로 한 간접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행정규칙의 법규성을 부인한다(김남진․김연태).

법규명령과의 관계에서 행정기관의 일반, 추상적 법정립작용이라는 점은 같으나,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1) 권력적 기초

법규명령은 법률의 수권을 요하나, 행정규칙은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에 대한 지휘감독권 내지는 특별권력에 근거하여 제정하는 것이므로 법률의 수권을 요하지 않는다.

 

(2) 규율대상

법규명령은 국민과 국가기관을 규율대상으로 하나, 행정규칙은 행정조직내부 또는 특별권력관계의 조직활동을 규율하므로 그 규율대상은 하급기관 또는 그 구성원이다.

 

(3) 효력

법규명령은 국민과 행정기관을 모두 구속하는 양면적 효력을 효력을 가지나, 행정규칙은 내부기관만 규율이므로 편면적 효력만 가진다.

 

(4) 위반의 효과

법규명령에 위반하면 위법하다. 행정기관도 이에 위반하면 이를 이유로 행정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행정규칙은 법규가 아니므로 위법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행정소송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이에 위반하는 공무원에 대한 징계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

 

2. 법규설

행정규칙의 법규로서의 성질을 긍정하는 견해로 학자마다 이론적 근거는 학자마다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다음과 같다.

“행정규칙의 대외적 효력의 부인을 전제로 그 법규성을 부인하는 종래의 견해에 찬성할 수 없다”(이명구) “행정규칙은 공무원의 복무규율과 같이 오로지 행정조직 내부의 사항에 국한되고 대외적 관련이 전혀 없는 경우가 아닌 한 법규성은 시인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겠다”(이상규)

이들은 행정규칙의 법규성을 인정하면서, “준법규적”이라고 할 경우, 구체적으로 그 효력이 무엇인지 불분명할 수 있다고 하여 이를 꺼리는 경향이다. 이하는 법규설의 논거이다.

 

(1) 법규개념의 확대

전통적인 법규개념은 국민의 자유와 재산 침해에 관한 내용의 규범이었으나, 이것은 19세기의 국왕을 세력을 통제하기 위한 의회의 기능을 나타내는 것으로 현재에는 타당하지 않다고 하고, 법규의 개념은 공권력의 행사 및 공공사무처리의 근거와 구속력 있는 준칙을 정하여 주는 규범이라고 하면서 행정규칙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한다. 물론 법규개념을 확대하자는 견해에서도 모든 행정규칙이 동일한 규범은 아니며, 여기에도 법적 구속력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2) 법적 구속력을 갖는 행정규칙

 

① 재량준칙(행정의 자기구속의 법리)

어떤 행정처분이 특정한 행정규칙(재량준칙)에 의하여 대량적 균일적으로 행해질 때 어떤 하나만의 처분만이 행정규칙에 위반하여 행해진 때는 그 처분은 평등원칙에 위반되어 위법한 처분이 된다고 한다. 이로써 행정규칙(재량준칙)은 ‘사실상 법규(法規)에 가까운 기능’을 하게 되며, 이 때 평등원칙은 재량준칙을 외부적 법규로 바꾸어 놓는 ‘전환규범’(轉換規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행정규칙에 의해서는 위법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나 평등원칙을 매개로 행정규칙이 위법의 문제를 발생시키는 법규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

 

재량준칙의 법규성

유흥업소 허가 신청을 한 모든 조건이 동일한 A, B, C, D의 네 사람이 있는데, 서초구청장은 유흥업소허가 처분을 제한하는 훈령(訓令)에 따라 A, B, C에게는 허가를 하였으나, D에게만 훈령을 위반하여 허가를 거부한 경우, 이 처분은 평등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 경우 재량준칙인 훈령은 외부적 법규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② 법률대체적규칙(법률대위적규칙)

행정권 행사의 기준 및 방법에 관하여 법령에 의한 규율이 없는 영역에서 행정권행사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경우이다. 예컨대 법률이 특정분야에서 단지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 제정되는 보조금지급기준을 정하는 행정규칙은 법률대체적규칙이다.

법률대체적규칙에 직접적 대외적 효력을 인정하는 견해도 있다(홍정선). 이 견해에 따르면 법률의 공백상태에서 행정권에게 잠정적으로 법률을 대신하는 법규제정권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행정권에게 고유한 법규제정권을 인정하는 것은 법치주의원리에 비추어 무리가 있으므로, 법률대체적 규칙을 재량준칙에 준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즉 위에서 말한 보조금지급의 경우 문제되는 것은 자의적이고 불공평한 보조금의 교부이므로, 보조금지급규칙을 재량준칙으로 보아 평등원칙을 매개로 공평한 자금교부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③ 법령보충규칙(행정규칙형식의 법규명령)

법령보충규칙이란 법령의 내용이 지나치게 일반적이어서, 보충 내지 구체화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보충하거나 구체화하는 행정규칙 또는 법률로서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법률의 위임을 받아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는 행정규칙을 말한다. 일설에 의하면 규범구체화행정규칙을 법령보충규정의 하나라고 보기도 한다.

법령보충규칙은 법령의 구체적 개별적 위임을 받았고 그 내용도 법규적인 것이므로, 직접 외부적 구속력을 갖는 규칙이라 할 수 있다. 또 법령보충규칙은 단독으로는 아니지만 상위법령과 결합하여 법규성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법령보충규칙은 행정규칙형식의 법규명령으로 주로 설명된다.

예) 법령보충규칙의 예: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제2조의 규정에 의한 주무부장관의 ‘최고가격지정고시’ 「대외무역법」제18조에 의한 ‘수출입공고’ 「사립학교법시행령」제12조 제5호에 의한 문교부장관의 처분할 수 없는 재산의 ‘범위지정’, 「국세청장훈령(訓令)」인 ‘재산제세조사사무처리규정’ 등 고시, 공고, 예규, 통첩 등의 형식으로, 법령의 구체적인 규정과 결합되어 있어 법규의 보충적 역할을 하는 경우와 법령의 시행을 위한 구체적, 기술적 준칙 등이 있다.

 

④ 규범구체화규칙

독일 뷜(Whyl)판결(‘85.12)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문기술적 분야에서 법률이 광범위한 일반조항이나 불확정개념으로 되어 있는 경우 행정권에 법률을 보충하는 형성권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법령보충규칙은 독일의 규범구체화규칙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양자간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① 규범구체화규칙은 전문기술적 분야는 사실상 법률유보가 불가능하다.

② 규범구체화규칙은 법률이 광범위한 일반조항 내지 불확정개념을 두고 있을 때 인정되나, 법령보충규칙은 상위명령의 명시적 수권이 있는 경우이다.

③ 따라서 법령보충규칙이 독일식 규범구체화규칙을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다수설).

 

(3) 특별명령법규설

행정규칙 중 하급기관에 대해 발하는 행정규칙이 아닌 특별권력관계에서 복종자에게 발하는 명령인 특별명령은 법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도 개인에게 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무원의 임면이나 복무에 관한 규정, 학생의 입학졸업에 관한 규정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것은 일면적 구속력(一面的 拘束力)을 가지는 규범에까지 법규의 개념을 확대한 것으로 이원적 법권론에 근거한다.

 

3. 준법규설

행정규칙이 대외적, 대국민적 효력을 갖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 때문에 이를 바로 “법규”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준법규” 또는 “법규에 준하는 성질” 등을 갖는다고 보는 견해이다.

“행정규칙 중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는 재량준칙이 설정한 통일적 재량행사기준은 행정에 대하여 법률유사적인 자기구속적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재판에 있어 그것은 헌법상의 평등원칙을 구체화하기 위한 연결점, 매개항이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법규에 가까운 법적의미를 발견하려는 견해들이 유력하다. ….”(김도창)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학설에 여기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이 견해는 원칙적으로는 비법규설에 서지만 행정의 자기구속의 원리 등이 적용되는 경우 예외적으로, 간접적으로 대외적 효력을 갖는다고 하면서 “법규에 준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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